2012년 5월 30일 수요일

작년의 기억, 암센터45병동 4508호

2012. 5.30.수.  비 조금.

오월이 가고 있다.

가끔 작년 첫 항암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했을때의 광경이 떠오르곤 한다.

암센터45병동 4508호.
병상의 이름표에는 주치의, 소속 과, 내 이름, 그리고 나이 만29세라고 적혀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왼쪽 가운데 병상이 내 자리다.
양옆에는 암이 재발, 전이되어 다시 치료를 받으시는 아주머니, 유방절제술을 받으시고 항암을 하시는 분이 계시고, 맞은편에는 의식이 흐릿하신 아주머니(보기에 황달과 복수 등, 말기상태인것 같았는데 내가 입원하고 몇일 후에 완화의료 기관으로 transfer 하셨다.), 그리고 또 한분. 연변에서 한국으로 돈을 벌러 오셨다가 암이 발병하셔서 항암치료를 하셨으나, 항암제가 듣지를 않아서 병원에서 퇴원하시라는 권고를 받으셨다. 너무나 안타까워하시며 나가시게 되었었다. 같이 잠깐 기도해 드렸던 기억이 있다.


작년, 그 즈음에 써 놓은 일기가 있어 옮겨 본다. 기록해놓지 않았더라면 기억하기 어려웠을 일들과 감정들.
-----------------------------------------------------------------------------------
2011. 2. 19. 토. (입원 사흘째)

주말에는 조치사항이 없다며 하루동안 외출을 허락해 주셨다.
병원에서 수액과 영양제를 맞는것이 조금 지루했는데, 기뻐하는 모습에 옆의 환자분이 부러워하신다.
어제는 은정이가 보호자로 곁에서 잤다.
5인실이라 다른 분의 코고는 소리가 잠을 설치게 했나보다.
원래 병원은 환자보다 보호자가 힘든곳이다.
아빠도 처음 입원한날 같이 계셨는데, 다른분들의 아픈모습등이 보기 어려우셨는지
다른 병동 복도 소파에서 주무셨다.

꽂고있던 주사바늘을 뽑으니, 자유인이 되었다.
입원첫날 병동에서 제일 free한 환자였던 것 같다. 환자복만 입은모습빼고는. 그러다가 주사를 꽂으니 여간 불편하게 아니었다.
항암주사 맞기전 휴가라고 생각하고 얼른 짐을 챙겨서 집으로 왔다.
입원전에 배가 아프던 것이 계속아프고 , 배도 부르고 누르면 아파서 X-Ray를 찍으면 gas가 많이 차있다고 나와서 어제는 관장을 했다. 어제 오전에는 이수현 선생님으로부터 항암치료 계획에 대해 아빠와 같이 설명을 듣다가 얼굴이 창백해질 정도로 아파서 병실로 왔더니 속이 안좋아서 화장실에 가서 토했다.
아빠가 마음이 많이 어려우셨는지 나중에 엄마에게 듣기로는 집에가서 속상하셨는지 별로 얘기를 안하셨다고 한다.
곁에 계실때는 웃어주시고, 평소와 별로 다름이 없었는데...
집앞 시장에서는 한팩에 3천원하는 딸기를 병원에서 만4천원에 팔길래 사지 않으려고 했는데 딸을 먹이시겠다고 귤, 방울토마토, 유기농쥬스,우유, 빵까지 잔뜩 사주셨다.
일이 있고나서 부모님의 사랑에 대해 정말 많은것을 깨달았다.

관장을 하고 나서는 조금 괜찮아졌다.
너무 아파서 맹장염이나 복막염이 아닌가 레지던트 선생님이 배를 진찰해 보셨는데, x-ray 나 피검사 등을 볼때 아니라고 하신다.
어제 PET-CT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다른데로의 전이는 없다고 했다.
정말 감사하다.
월요일에 전문선생님이 분석하신 자료를 봐야 알겠지만
조금 걱정되는 마음이 있었는데 다행이다.

이수현 선생님께서
'한쪽가슴으로 사랑하기'라는 책을 추천해 주셔서 이틀동안 다 읽었다.
이 병원의 박경희 라는 레지던트 샘이 나와 비슷한 유방암을 26세에 겪으면서 투병한 이야기를 수기와 전문적인 내용을 섞여 엮은책이다.
앞으로 항암치료를 어떻게 받는지 궁금했는데 도움이 되었다.
나도 확진을 받고 나서부터 기록을 해두자고 생각했었는데
다이어리에만 가끔썼지 미루고 있었는데
기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지금쓰고 있는것이다.
오늘은 잠깐 눈물이 나왔었다.
앞으로 항암치료를 받는동안 홀로 감당해야 하는것 등에 대해 생각하다가 외로움이 밀려왔다.
그리고 부모님께 죄송한 생각도 들고..눈물이 나왔다.
왜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일을 허락하셨을까 하다가
주님께서 위로를 주셨다.
어제 애란언니를 병동에서 설명듣다가 만났다.
언니가 병실에 와서 진심으로 기도해 줬는데 너무 감사했다. 나도 아픈사람들이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곁에서 진심으로 위로하며
기도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생각했다.

엄마가 마음이 울적하실때도 있다고 한다.
주님께서 엄마, 아빠 마음을 위로하시고
아빠가 하나님을 찾게 해주시길 기도한다.
사실 배도 아팠지만 마음속으로 항암을 미루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것 같다.
주사를 맞으면 부작용들을 이겨내야 하고, 또 탈모도 일어나고..
아직 내 마음에 평안함과 두려움이 공존하는것 같다.
내일 예배를 잘 드리고,
주님주시는 평안함으로 치료를 잘 감당해야 겠다.
이 일이 한바탕 꿈이었으면 할때도 있고,
항암을 받기전에 주님께서 기적을 베푸셔서 없었던 것처럼 치유해 주셨으면 할때도 있다.
그런데 만약 주님께서 이 치료과정도 쓰시고자 하신다면
순종하겠다고 고백했다.
분명히 이길힘을 주시고 함께 하실거라 확신하면서..
목요일 PET-CT 검사시간도 조금 앞당겨 조정해 주시고, 입원하게 해주신것(나중에 들어보니 병실이 잘 나지 않는데, 운이 좋았다고 옆 환자분이 말해주셨다.) 나는 다 하나님께서 예비해 주신거라고 믿는다. 좋은 의료진도 만나게 해주시고..감사하다.
이번일을 통해 무엇보다 주님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지고 그분을 알아가고 나의 사명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