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31일 화요일

쓰시기에 좋은 그릇으로..

하나님의 뜻은 다 알수 없다.
임목사님을 일으켜 주시길 바랬지만...부르심을 받으셨다.
그리고 목사님이 새로 부임하셨다.
장지에 가서 임목사님 장례예배를 드리는데,  나의 인생도 하나님의 손안에 있고 언제 부름을 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겠다고 다짐했다.

새로오신 목사님께서는 새벽기도때 민수기로 말씀을 전하신다.
성경을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알고 싶은 마음의 소원이 있었는데, 매일성경본문으로 새벽기도때 말씀을 강론하신다고 하니 기도가 응답된것 같아 감사하다.

교회는 영적전투를 수행해야 한다는 말씀. 그렇지 않으면 사단이 역사한다는 말씀이 와 닿았다.

주일학교를 다시 시작하면 보조 교사로 섬기게 될것 같다.
우리 귀염둥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고 재미있게 가르칠수 있을까 연구를 좀 해야겠다.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로 했다. 초등학교 3년간 쳤던 실력은 어디갔는지 지금은 손가락이 많이 굳었다.
주로 찬송가와 복음성가 반주를 할수 있는 것을 목표로 정하고 몸 컨디션이 허락하면 나와서 연습을 하기로 원장님과 얘기가 됐다.

이 특별한 시간들을 허투루 쓰지 않고 주님 쓰시기에 좋은 그릇으로 잘 준비되길 바란다.

5차 항암, 부작용이 나타나다

5차 항암부터는 주치의 선생님도 바뀌고, 항암제도 다른약을 썼다.
4차까지는 10분정도 주사 몇대를 맞았었는데, 이번에는 두시간정도 병상에 누워 약을 투여받았다. 교과서적으로는 이번약이 감당하기에 다 낫다고 했지만 실제는 젊은 여성들은 더 어려워한다고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아니나 다를까 항암제를 맞은지 30분쯤 뒤에 부작용이 나타났다.
갑자기 속에서 뭐가 올라오는것 같더니 얼굴과 목까지 빨갛게 달아올라 숨쉬기가 어려웠는데 곁에계시던 엄마가 간호사 언니를 불렀다. 결국 약을 투여하는것을 잠시 중단하고,  부작용 방지 주사를 다시 맞고 투여량을 줄여 다시 맞게 되었다.

심리적으로 힘이 들었다.
외래 주사실에 켜놓은 TV 소리, 옆 환자분의 전화 소리, 다른 환자분이 드시는 음식물 냄새 등이 신경 쓰이고, 거기다가 춥기까지 했다.

아침 11시쯤 병원에 왔는데 저녁 7시가 넘어서야 병원문을 나서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지난번 초음파, 촬영 결과 종양크기가 줄었다고 한다.
이번에는 임상시험도 같이 하게 되었는데 ,  효과가 나타나서 종양이 없어지고 낫게 하는데 사용해 주시길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집으로 오는 택시안에서
기사분과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분도 간암으로 투병하시고 지금 나으신지 3년째라고 하셨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격려를 해주셨다.

전에 일할때, 암환자들과 가족들의 사회정서적 부담과 비용에 관한 논문을 읽고, 정책적인 지원 필요성에 대해서도 늘 대해왔던 것이었는데, 이제는 더욱 체감한다.
환자 한 사람과 그 가족들의 부담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

새로운 약이라 5차 항암 term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고 힘주시길 간절히 바란다.

지금은 컨디션이 괜찮다.

2011년 5월 4일 수요일

공감 그리고 눈물

2011.5.4. 화

어제(5.3.)는 아침일찍부터 서둘러 엄마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암센터에서 채혈을 하고 본관 유방암클리닉으로 이동해서 기다리는 동안 은정언니가 왔다. 그리고 은실이, 현희,윤경이까지.. 우리 팀원들이 얼굴을 보고싶다고 찾아온것이다. 약 3개월만의 만남이다. 이른 시간인데도 멀리서부터와준 지체들이 정말 귀하고 고마웠다.
투병을 하면서 가족, 친척들, 친구들 그리고 기도해 주는 교회 성도들이 큰 힘이 된다.

외래 진료를 보면서 교수님께 이번 텀은 복부통증이 심해서 힘들었다고 했더니, 좀 더 강한 진통제를 처방해 주시고 산부인과 협진을 의뢰해 주셔서 초음파검사를 했다. 검사결과는 자궁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아마도 배란통인것 같다고 3개월후에 초음파를 다시 보자고 하셨다.

산부인과 진료를 마치고 의자에 앉아 수납을 하려고 기다리는데 분홍색 가운을 입은 아주머니가 옆에 계셨다. 분홍색가운은 유방암 검진을 받을때 입는 옷이라 아주머니께 조심스레 여쭤보았다. 어디까지 치료를 받으셨는지.. 한쪽에있던 암이 다른쪽에도 전이가 되어 치료 절차를 밟으시는 중이라고 하셨다. 병원에 들어오게 되면 환자들끼리는 서로 정서적으로 지지도 되고 정보도 교환하게 된다. 내가결혼도 안한 아가씨 인걸 아시고 내 어깨를 감싸고 눈물을 흘리신다. 당신은 이제 60세를 넘으셔서 괜찮지만 나의 처지를 안타깝게 보시고 눈물을 흘리신것이다.
때로는 공감의 눈물이 정서적으로 큰 위로가 될때가 있다.
아주머니께 완치되시길 바란다. 힘내시라.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 잠깐 얘기를 나누고 자리를 떠났다.

다시 암센터로 이동해서 외래 항암주사실에서 혈압을 재고, 체온을 쟀다.
정상이다.
약이 준비될 동안 엄마와 고모는 말씀을 나누시고 나는 창밖으로 보이는 연두빛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싱그러운 연두빛 나뭇잎들이 나에게 소망을 준다.

오늘로써 빨간약은 끝이다. 간호사 언니가 능숙하게 정맥혈관을 찾아 약을 투여한다. 벌써 몸이 알아차리고 반응을 한다. 신경도 예민해진다. 입에 사탕을 물고 있으니 좀 나은것 같다.
다음5차 항암부터는 주치의 선생님이 바뀌게 된다. 손교수님께서 미국연수를 가셔서 처음 병원입원했을때 나에게 항암치료 계획을 설명해 주시던 이교수님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면서 임상시험도 같이 진행한다. 임상시험을 통해 다른 유방암환자들이 더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다면 좋은거니까 수락했다.
이번 약은 약 10분동안 주사기 몇대로 투여를 받으면 됐지만, 5차부터는 2시간정도 링거 주사를 맞게 된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바뀌는 약이 부작용이 덜하다는 얘기가 있어서 희망을 가져본다.

엄마와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그리고는 한숨 자니 좀 나아진다.

이제 3주동안 큰 부작용없이 잘 감당하길 기도드린다.
그동안 다른 환자분들보다 큰 탈 없이 잘 온것이 모두 주님의 은혜이고, 주변에 기도해 주시는 분들 덕분이다. 특히 새벽기도때 지권사님께서 목사님기도 다음으로 나를 빠뜨리지 않고 기도해 주시는것. 정말 황송하고 감사하다. 이번 치료차 서울로 오기전에도 집으로 오셔서 힘을 주셨다. 성도들의 기도와 사랑을 받게 해주시니 주님의 은혜에 정말 감사드린다.

3개월이 지났다.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이번 특별한 경험을 통해서 주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가.
그리고 더욱 주님과 가까워지는 것이다.

하나님, 저를 주님의 뜻대로 사용해 주세요.
욥의 고백처럼 정금같이 나오게 해주세요.

2011년 5월 3일 화요일

4차 항암을 앞두고..

2011.5.2.월.

엄마가 이번 치료 때는 같이 올 수 있어서 마음이 놓이신다고 하셨다.
딸 간호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셨다. 그동안 아픈 딸을 집에 혼자 두고 가는게 마음에 늘 걸리셨단다. 부모님의 사랑은 정말 크다. 감사하고 죄송하다.

 내일 아침 병원에 가서 채혈을 할것이고,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 3주간의 컨디션을 체크하고 백혈구, 혈소판수치, 혈압 등이 치료 받기에 회복이 되었으면 계획대로 4차 항암주사를 맞게 될것이다.
1월말에 확진을 받았으니 벌써 3개월이 지나갔다.
1,2차 term동안은 부작용이 그리 심하지 않아서 감당할만 했는데,  3차 항암후에는 힘든 시기를 겪어서인지 내일 다시 주사를 맞는게 꾀가 난다.
4차항암까지는 '아드리아마이신'이라는 빨간 약을 맞는다. 환자들사이에서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아 '붉은 악마'로 표현이 된다지만 암세포를 죽여주는 약이니 나는 '붉은 천사'로 생각하기로 했다.
 피검사결과 수치들이 정상이면 항암주사를 맞게된다. 약국에 먼저 들러 구토방지제를 먹고, 외래 주사실에 가서 혈압을 체크하고, 체온을 재고 약을 기다린다. 간호사 언니가 내 이름을 호명하면 의자에 앉아 약을 투여할 혈관을 찾는데,혹 약이 잘못들어가 혈관이 괴사될수도 있어, 식염수와 번갈아서 큰 주사기로 약을 맞을때는 긴장하게 된다.
약 10분정도 주사를 다 맞고 나면 몸이 벌써 항암제에 반응해서 좀 힘들어지는데, 집으로 돌아와 한 잠 자고 나면 나아지는 것 같아 그렇게 하고 있다.
대게 항암주사를 맞은 2주째가 면역력도 약해지고 힘들다고 하는데, 내 경우에는 1주를 지낼때 가장 어려운것 같다. 다시 몸이 회복되는 3주째는 정말 '살 것' 같다.

얼른 8번의 항암치료가 지나가면 좋겠다.

오늘 오후 고속버스를 타고 강남터미널로 들어오는데, 창밖으로 머리를 아무렇게나 묶고 꽃이 핀 길을 걸어가는 여성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얼른 완치가 되어
머리카락이 자라나면, 화창한 봄날 그 길을 걷고 싶다.